제2차 세계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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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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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1939년 9월 1일 ~ 1945년 8월 15일
장소 유럽, 지중해, 아프리카, 중동,
동아시아, 동남 아시아, 태평양
결과 1. 연합군 승리
2. 국제 연합의 국기 국제 연합 창설
3. 미국의 국기 미국소비에트 연방의 국기 소비에트 연방이 초강대국으로 성장
4.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 사이 냉전으로 치달음
이유 세계 대공황, 베르사유 조약
교전국
연합국
US flag 48 stars.svg 미국
영국의 국기 영국
폴란드의 국기 폴란드
프랑스의 국기 자유 프랑스[1]
소비에트 연방의 국기 소비에트 연방
중화민국의 국기 중화민국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기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의 국기 뉴질랜드
캐나다의 국기 캐나다
네덜란드의 국기 네덜란드
추축국
나치 독일의 국기 나치 독일
일본 제국의 국기 일본 제국
이탈리아 왕국의 국기 이탈리아 왕국
프랑스의 국기 비시 프랑스[2]
핀란드의 국기 핀란드
헝가리의 국기 헝가리 왕국
루마니아의 국기 루마니아
불가리아의 국기 불가리아
타이의 국기 타이
지휘관
US flag 48 stars.svg 프랭클린 루스벨트
소비에트 연방의 국기 이오시프 스탈린
영국의 국기 윈스턴 처칠
중화민국의 국기 장제스
프랑스의 국기 샤를 드골
나치 독일의 국기 아돌프 히틀러
일본 제국의 국기 히로히토
일본 제국의 국기 도조 히데키
이탈리아의 국기 베니토 무솔리니
프랑스의 국기 필리프 페탱
헝가리의 국기 호르티 미클로시
루마니아의 국기 이온 안토네스쿠
타이의 국기 피푼 송크람
피해 상황
군인 사망
1400만 명 이상
민간인 사망
3600만 명 이상
총 5000만 명 이상 사망
군인 사망
800만 명 이상
민간인 사망
400만 명 이상
총 1200만 명 이상 사망

제2차 세계 대전 (第二次世界大戰, World War II)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남긴 가장 참혹했던 전쟁이다. 통상적으로 1939년 9월 1일 새벽 4시 45분 나치 독일군이 폴란드의 서쪽 국경을 침공하고, 소련군이 1939년 9월 18일 폴란드의 동쪽 국경을 침공함으로써 발발하였다고 본다. 한편에선 1937년 7월 7일 일본중화민국 침략, 1939년 3월 독일군의 프라하 진주 등을 개전일로 보기도 한다. 1945년 8월 6일과 8월 9일, 미국원자 폭탄 투하 이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면서 끝이 났다. 이 결과로 한국, 타이완 등 일본의 식민지로 남아 있던 지역들이 독립하거나 모국으로 복귀하였다.

전사자는 약 2500만 명, 민간인 희생자도 약 4천만 명에 달했다. 전쟁 기간 중 일본은 1937년 중국 침략 때 난징 등에서 대학살을 감행, 겁탈과 방화를 일삼으며 수십만 난징 시민을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1944년 여자 정신대 근무령을 통해 일본인을 비롯한 조선인, 중국인, 동남 아시아인 등 여러 나라의 여성을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하였으며, 독일은 ‘인종 청소’라는 이유로 수백만 명 이상의 유대인집시를 학살하였다. 또한 미국은 1945년 3월 10일 일본의 수도 도쿄와 그 주변 수도권 일대를 대규모로 폭격한 이른바 도쿄 대공습을 감행해 15만 명을 살상했고(재일 조선인 포함), 같은 해 8월 6일과 9일에 각각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자 폭탄 공격을 감행하여 약 34만 명을 살상하였으며, 영국과 미국의 공군은 드레스덴뮌헨 공습을 감행하여 각각 20여만 명을 살상하는 등, 전쟁의 피해는 극히 심하였다.

전쟁은 크게 서부 유럽 전선, 동부 유럽 전선중일 전쟁·태평양 전선으로 구분할 수 있다. 유럽 전선만을 얘기할 경우 히틀러 전쟁으로 부르기도 한다.

목차

배경 및 원인

제1차 세계대전자본주의 세계는 전반적 위기단계에 돌입. 더욱이 자본주의 제국의 발전의 불균등이 두드러졌고, 1929년1933년세계경제대공황은 이와 같은 불균등에 근거하는 국제대립을 가속화 시켰으며, 열강의 블록화와 폐쇄경제적인 경향은 자본주의국으로서 기초가 약한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에게 심각한 영향을 주게되었다.

독일에서는 국내정치의 혼란 가운데에서 1933년 베르사유 체제 타파를 외치던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고, 같은 해 10월, 제네바 군축회의 결과의 불만으로 국제연맹을 탈퇴하였으며, 1935년 3월에는 재군비를 선언, 1936년 3월 라인란트 비무장지대에 진주하여 로카르노 조약을 파기함과 아울러 베르사유 조약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어 독일이 재무장하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1937년 11월 오스트리아체코슬로바키아의 합병을 결의한 히틀러는 1938년 2월 일련의 인사이동으로 나치스 체제를 강화하고, 같은 해 3월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였다.

이어 체코슬로바키아수데텐 지방을 요구하여 전쟁의 위기를 조성하자, 영국 총리 체임벌린1938년 9월, 뮌헨 회담에서 체코슬로바키아로 하여금 수데텐 지방을 할양케 하였다. 이리하여 독일은 동 ·중부 유럽 진출을 위한 전략적 지위를 확보하였으나, 한편 국제연맹 또는 집단안전보장 체제는 붕괴되어 독일이 폴란드를 전격전으로 탈환하여 2차대전의 서막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경과

전쟁의 경과
     서방 연합국      소련 측 연합국      추축국, 추축국의 식민지와 비시 프랑스      중립국

유럽과 아프리카 전선

유럽 전선에서 초기에 독일은 전격전의 입안으로 초기에 백색 작전, 황색 작전, 낫질 작전, 베저 작전을 성공시켜, 폴란드,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덴마크, 노르웨이, 북부 프랑스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영국 공격을 감행하려 했던 바다사자 작전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패함으로써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이후 나치 독일은 동쪽으로 관심을 돌려 1941년 이탈리아가 점령하지 못한 그리스와 독일과의 동맹에 반대하는 정변이 발생한 유고슬라비아를 비롯한 발칸 반도를 모두 점령하고,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를 동맹국으로 삼았다. 그리고 1941년 6월 22일, 소련에 대한 바르바로사 작전을 발동하여 소련을 침공하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승승장구하여 모스크바 근처까지 진격했으나, 보급 부족과 겨울의 시작으로 인해 패퇴하였고, 1942년에는 코카서스카스피 해 연안의 석유 자원 확보를 위해 이른바 청색 작전을 입안하여 남부로 진격하였다.

그러나 1942년 말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프리드리히 파울루스가 이끄는 6군이 소련군의 천왕성 작전에 밀려 전멸하였고, 코카서스로 진격했던 군대들도 후퇴하면서 실패로 끝났다. 결국 막다른 골목에 몰린 독일은 치타델 작전을 입안하여 소련의 쿠르스크 돌출부에 대한 총 공세를 감행했으나 1943년 7월, 쿠르스크 전투에서 다시 소련군에 패하면서 기울어 밀리기 시작했다.

이탈리아군을 돕기 위해 참전한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는 부족한 병력과 병참 지원에도 불구하고 에르빈 롬멜 장군과 북 아프리카 군단(DAK)이 선전하였으나, 1943년 초 튀니지에서 항복하면서 완전히 축출되었고, 이후 연합군은 시실리 및 이탈리아 본토로 진격을 개시했다. 이탈리아 본토로 연합군이 상륙하자 이탈리아 정부는 베니토 무솔리니를 실각시키고 연합군에 항복한다. 이미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고 있던 독일은 플란데 작전을 발동, 이탈리아군을 무장 해제하고 베니토 무솔리니를 복귀시킨 후, 사실상 점령군 행세를 하며 연합군을 맞아 싸웠다. 이 이탈리아 전선은 유례없는 산악전으로 진행되면서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한편 독일은 대서양 해안을 따라 1942년부터 소위 대서양 방벽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 작업에는 수많은 외국 포로가 동원되었으며 프랑스로부터 네덜란드까지 연결되었다. 미군과 영국군은 1942년의 디에프 기습 공격에서 얻은 전훈을 참고하여 오버로드 작전(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개시했다. 이 작전으로 연합군은 프랑스를 해방시키고 독일 본토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독일군은 서부에서는 흔히 벌지 대전투로 불리는 라인 강 수비 작전으로, 전세의 재역전을 노렸으나, 양측에서 압박해 오는 동서 연합군을 막을 힘은 없었다. 결국 5월 1일, 소련군에게 베를린을 점령당하고, 엘베 강토르가우에서 미군과 소련군이 만나서 악수하는 와중에 1945년 5월 7일 서부 연합군에 항복하고, 5월 8일에는 동부의 소련군에게 항복하였다.

아시아와 태평양 전선

태평양 전선은 애초에 일본이 국민당과의 중일 전쟁이 진행 중에 있었고 전쟁 기간 중에 비시 프랑스령의 인도차이나 반도를 점령하는 등 교전이 있었다. 중국에서의 일본의 세력 확대를 경계하고 중화민국과 장개석 정권을 지지해 왔던 미국은 일본이 인도차이나 반도를 점령하자 이른바 ABCD 포위망을 구축하고 나아가 일본에 대한 석유 금수 조치와 철광의 수출 제한을 발동하면서 일본을 고립시켰다. 그러자 자원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일본은 경제 위기의 초래를 우려하였고 네덜란드령 동인도와 영국령 말레이 반도, 버마,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지역의 자원 산지들과 나아가 인도, 태평양의 섬들을 장악해 이 지역의 헤게모니를 일본을 중심으로 돌리려는 이른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을 제창하였다.

강경파가 득세하는 가운데 미국의 경제 제재가 심화되자 결국 일본은 1941년 12월 8일, 미국 하와이 주진주만을 기습 폭격하면서 전쟁은 크게 확대되었고, 초반 기습의 효과를 톡톡히 누린 일본군은 단숨에 홍콩, 동부 미얀마(버마), 서부 뉴기니 섬, 필리핀, 네덜란드령 동인도 등 인도양의 대부분과 솔로몬 제도까지의 모든 태평양의 섬들을 점령하였다. 이렇게 초기 전쟁에서 주도권을 쥐게 된 일본은 호주령 남 뉴기니의 주요 항구인 포트모르즈비를 점령해 오스트레일리아 본토를 노리려 하였으나 육전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 육군의 영웅적 활약으로 패전하였고 해전에서도 산호해 해전이 무승부로 끝나면서 실패하였다.

이후 일본은 미국 항공모함 부대에 의해 둘리틀 공습(1942년 4월 18일)으로 주요 도시가 최초로 미국 공군의 공습을 받았고, 이런 일련의 사태로 일본은 미국 항공모함 부대의 격멸과 태평양에서의 재해권 완전 장악을 위해 미드웨이 섬에 대한 공세에 나섰지만 미드웨이 해전에서 대패하면서 제해권과 제공권에 큰 공백을 갖게 되었다. 이후 미국은 망루 작전을 입안하여 남태평양의 섬들을 탈환하는 작전을 세우고 과달카날 섬을 필두로 반격을 개시하였다.

일본은 남태평양의 섬들에서 벌어진 육전 및 해전에서 참패하였고 전략적으로 크게 중요한 필리핀마저 상실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벌어진 레이테 해전에서 보유 해군의 대다수를 상실하였다. 미얀마에서 벌어진 임팔 작전에서도 대패하자 결국 한반도의 제주도와 일본 열도의 규슈, 오키나와 섬을 최후의 방어전장으로 설정하고 항전하려 했으나, 미국의 일본 본토 공습으로 방어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1945년 3월 10일 도쿄 대공습으로 15만이 넘는 일본인 및 재일 조선인이 목숨을 잃었다. 한편,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는 1945년 9월에 연합국측에 참가하여 일본을 무너뜨리는 정책을 하고 있었다.

1945년 6월 23일 수개월간 참혹한 전투가 벌어지며 일본이 끝까지 사수하려 했던 오키나와가 미군에 함락되었으며,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 공격을 받고 1945년 8월 8일 그동안 중립을 지키던 소련이 만주로 진격하면서 연합군이 본토 상륙을 개시하기 전에 1945년 8월 15일에 항복하였다. 결과적으로 중립을 지키던 대한민국도 1945년 9월에 연합국측에 참가하기도 전에 일본이 8월 15일에 항복하자 대한민국은 결국 38도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갈리고 만다.

종전

소련은 1945년 8월 8일, 일본 제국에 선전포고를 한다. 소련은 일본 본토에 상륙하지는 않았으나, 8월 폭풍 작전으로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만주한반도 북부에서 일본 세력을 축출하였다. 또한 과거 러일 전쟁의 패배로 러시아 제국이 일본 제국에 할양하였던 사할린 섬 남부와 쿠릴 열도를 탈환하였다.

1945년 9월 2일, 제2차 세계 대전은 일본의 전권대사였던 외상 시게미쓰 마모루와 미국 측의 맥아더 원수가 요코하마 근해에 정박한 미 해군 미주리 호의 선상에서 무조건 항복 문서에 조인하면서 완전히 끝이 났다.

연표

1939년

  • 9월 1일 - 독일, 폴란드를 침공.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 9월 3일 - 영국과 프랑스, 독일에 선전 포고.
  • 9월 18일 - 소련군, 폴란드 동쪽국경에 침공.
  • 9월 27일 - 독일, 바르샤바를 점령. 그리고 항전에 참여한 폴란드인을 체포.
  • 9월 28일 - 독일-소련 경계 설정, 우호 조약으로 폴란드 분할. 소련, 핀란드에 영토 통과를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함.
  • 11월 30일 - 소련, 핀란드에 침입(겨울 전쟁). 독일군이 핀란드를 지원함. (스웨덴은 무기를 대여했음. 그러나 다시 중립으로 회귀)

1940년

  • 3월 12일 - 겨울 전쟁 종료. 핀란드는 소련에 영토의 10%를 할양.
  • 4월 9일 - 독일, 덴마크를 점령, 노르웨이 침략(베저 작전).
  • 5월 10일 - 영국, 윈스턴 처칠 거국 내각 수립.
  • 5월 11일 - 독일, 프랑스 전역 공격 개시. 베네룩스 공격 개시. 룩셈부르크 항복.
  • 5월 15일 - 네덜란드, 독일에 항복.
  • 5월 28일 - 벨기에, 독일에 항복.
  • 6월 4일 - 영국-프랑스군, 됭케르크 철수 작전 성공.
  • 6월 10일 - 노르웨이, 독일에 항복. 이탈리아, 프랑스에 선전 포고.
  • 6월 14일 - 독일군, 파리 입성.
  • 6월 22일 - 프랑스, 독일에 항복.
  • 7월 11일 - 프랑스에 비시 정권이 수립.
  • 7월 19일 - 미국 해군 대확장법 제정.
  • 8월 1일 - 아돌프 히틀러, 영국 침략 준비 명령(바다사자 작전). 영국 항공전 개시.
  • 8월 6일 - 소련이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을 불법 점령. 이는 발트 3국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간주.
  • 9월 27일 - 독일, 이탈리아, 일본, 추축국에 조인.
  • 11월 20일 - 헝가리, 삼국동맹에 가입.
  • 12월 18일 - 아돌프 히틀러, 바르바로사 작전 준비 명령.

1941년

  • 1월 6일 -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4개의 자유” 연설.
  • 3월 11일 - 미국, 랜드리스 제정.
  • 4월 6일 - 독일, 유고슬라비아 침공.
  • 4월 17일 - 유고슬라비아, 독일에 항복.
  • 4월 17일 - 독일, 이탈리아가 실패했던 그리스에 침공.
  • 4월 23일 - 그리스, 독일에 항복. 독일이 크레타 섬을 탈취함.
  • 5월 5일 - 에티오피아, 이탈리아의 불법 점령(1936~1941)으로부터 해방.
  • 5월 6일 - 스탈린, 인민위원회의 의장에 취임.
  • 5월 10일 - 독일 부총통 루돌프 헤스, 영국과 화평을 추진하기 위해 영국으로 비행기를 직접 몰고 날아가지만, 영국으로부터 전쟁 포로 취급을 당하고 체포됨.
  • 6월 22일 - 독일, 사상 최대의 원정군으로 소련을 기습 공격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 모스크바 공략은 추위와 보급 문제로 실패.
  • 8월 12일 - 미국과 영국 정상 회담, 대서양 헌장 발표.
  • 9월 24일 - 소련 등 15개국, 지지 표명.
  • 12월 7일 - 소련, 독일에 반격. 일본, 진주만 공습.
  • 12월 9일 - 중화민국, 독일과 이탈리아에 선전 포고.
  • 12월 9일 - 대한민국임시정부, 대일선전포고
  • 12월 11일 - 독일과 이탈리아, 미국에 전쟁 선포.
  • 12월 25일 - 일본, 영국령 홍콩 점령.

1942년

  • 1월 1일 - 연합국 26개국, 워싱턴에서 공동 선언 조인.
  • 1월 20일 - 독일, 반제 회의에서 유대인을 학살하기로 결정.
  • 2월 15일 - 일본, 싱가포르를 점령하여 ‘쇼난’(昭南)으로 개명하다.
  • 4월 18일 - 미 육군 항공대, 일본 본토를 기습·폭격하는 이른바 둘리틀 공습을 감행.
  • 6월 5일 - 일본,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에게 대패. 이 해전 이후, 미국은 태평양 전선에서의 주도권을 잡음.
  • 6월 30일 - 에르빈 롬멜이 지휘하는 독일-이탈리아군이 엘 알라메인에 도착.
  • 8월 16일 - 미·영·소 지도자, 모스크바 회담. 소련, 제2전선 요구. 미-영군, 북아프리카 상륙 작전(횃불 작전) 결정.
  • 9월 13일 - 독일 6군, 스탈린그라드 시내 돌입.
  • 11월 8일 - 미-영군, 북아프리카 상륙.
  • 11월 11일 - 독일, 비시 정권하의 비점령 프랑스 지역을 점령 지역으로 편입시켜 튀론 항을 제외한 프랑스 전 영토를 점령.

1943년

  • 1월 25일 - 미국과 영국, 카사블랑카 회담에서 ‘무조건 항복 원칙’ 발표.
  • 1월 31일 -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군 승리.
  • 5월 13일 - 북아프리카의 독일-이탈리아군 항복.
  • 6월 10일 - 코민테른 해산.
  • 7월 3일 - 독일과 소련 사이에서 쿠르스크 전투 개시.
  • 7월 10일 - 미국과 영국 연합군, 시칠리아 섬 상륙.
  • 7월 25일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베니토 무솔리니를 체포하고, 바돌리오 장군을 내각으로 삼음.
  • 7월 23일 - 쿠르스크에서 소련군 승리. 독일군 동부 전선 주도권 상실.
  • 8월 24일 - 미·영 지도자, 퀘벡 회담. 제2전선 결정.
  • 9월 3일 - 이탈리아, 연합국에 항복.
  • 9월 8일 - 독일, 로마 점령.
  • 9월 15일 - 무솔리니 구출, 파시스트 공화 정부(살로 공화국) 수립.
  • 10월 13일 - 국왕과 바돌리오 내각, 남쪽으로 도피. 독일에 선전 포고.
  • 10월 19일 - 모스크바에서 미·영·소 3국 외상 회의.
  • 11월 26일 - 미국·영국·중국 카이로 회담. 한국 독립 결의.
  • 11월 28일 - 미국·영국·소련, 테헤란 회담. 소련의 대일 참전 토의.
  • 12월 1일 - 카이로 선언 발표.

1944년

노르망디로의 상륙.
  • 1월 20일 - 소련, 레닌그라드 해방.
  • 5월 13일 - 독일군, 크림 반도에서 후퇴.
  • 6월 4일 - 이탈리아 전선의 미국 및 영국군, 로마 해방.
  • 6월 6일 - 역사상 최대의 상륙작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돌입.
  • 6월 22일 - 소련군 바그라티온 작전 개시.
  • 7월 20일 - 독일,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발생.
  • 7월 22일 - 연합국 45개국, 브레턴우즈 협정을 맺고, IMFIBRD 설치.
  • 8월 1일 - 폴란드의 바르샤바 봉기 발발.
  • 8월 19일 - 바그라티온 작전 성공, 독일 중부 집단군 괴멸.
  • 8월 24일 - 루마니아, 연합군에 항복하고 동맹국의 지위를 포기.
  • 8월 25일 - 연합군, 파리 해방. 루마니아, 독일에 선전 포고.
  • 8월 26일 - 불가리아, 동맹국에 빠져나와 중립 선언. 훗날, 소련이 선전 포고를 하자 곧바로 항복.
  • 9월 2일 - 핀란드, 독일과 국교 단절.
  • 9월 9일 - 샤를 드골, 임시정부 수립. 불가리아, 조국 전선 정부 수립.
  • 9월 10일 - 불가리아, 연합국으로 전환. 독일에 선전 포고.
  • 9월 19일 - 핀란드, 영국 및 소련과 휴전 협정 조인.
  • 10월 9일 - 영국과 소련의 지도자, 모스크바 회담. 발칸 분할에 대해 의견 일치.
  • 10월 11일 - 헝가리의 국가원수인 미클로시 호르티가 나치 독일에 의해 감금당함.
  • 12월 10일 - 소련군과 티토의 군대가 베오그라드를 해방.
  • 12월 31일 - 헝가리, 독일에 선전 포고.

1945년

1945년 8월 9일 핵무기 투하 전·후의 나가사키 시
일본의 항복

사용된 무기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말미암아 무기 개발 금지와 국방군 제한 등을 당하였으므로 다수의 무기 개발이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전에 소련에서 비밀리에 이루어졌는데, 히틀러의 집권 이후 공공연하게 베르사유 체제의 철폐가 주장되고 히틀러의 반공 정책으로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협력 관계가 청산되었다.

독일군

전차

전투,공격,폭격기

대전차 무기

일본제국군

전차

전투,공격,폭격기

이탈리아군

전차

붉은 군대 (소련군)

전차

전투,공격,폭격기

영연방군

전차

전투,공격,폭격기

미군

전차

전투,공격,폭격기

대전차 무기

2차 대전 관련 주요 학살 사건

  • 난징 대학살 :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6주간 중국인을 무차별 학살한 사건. 사건의 실체 및 학살된 피해자 수에 대해서 오늘날 논란이 많다.
  • 유대인 대학살 : 600만 명이 현재 일반적인 설이나, 다른 의견도 있다.
  • 카틴 숲의 학살 : 소련군이 폴란드군 장교단을 카틴 숲에서 학살한 사건. 현재 이 사건은 러시아와 폴란드 간의 갈등을 빚고 있다.
  • 말메디 포로 학살 사건 : 전쟁 말기 벨기에 아르덴느 숲의 바스통에서 무장 친위대가 미군 포로 수십 명을 학살했다는 사건. 그러나 전후 조사 과정에서 과장됐음이 드러났다.
  • 독일군 포로 학살 : 종전 후, 연합군은 포로로 잡힌 독일군을 강제로 국가 재건 등과 같은 중노동에 투입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프랑스, 소련의 경우), 일부러 의약품과 음식의 제공을 줄여 굶겨 죽이는 만행(蠻行)을 저질렀다(미국의 경우).

참고 자료

  1. 샤를 드골이 영국으로 망명하여 세운 임시정부이다. 비시 프랑스와 구분하기 위해 자유 프랑스로 표기하였다.
  2. 비시 프랑스는 사실상 나치 독일의 괴뢰 정부로 나치에 협조한 것 때문에 추축국으로 분류한다.
  • 박태균, 《한국 전쟁》 (책과 함께, 2005년) 64~65쪽.

참고 전쟁

Questions for article: 2 차대전 무기, สงครามโล?ครั้งที่สอง, 크림반도 독일, 요하임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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