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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이고 천황 (後醍醐天皇 1288년11월 26일 – 1339년9월 19일) 은 일본의 96번째 천황이였다. 메이지 이후의 사학자들은 그의 치세게 1318년에서 1339까지로 산정하지만 그이전에는 1318년에서 1332년까지로 고려되었다. 그때 그는 쇼군에 의해 폐위되었다. 이 14세기의 주권은 9세기의 다이고 천황의 이름을 따라서 지어졌다. 그는 고다이고 2세라고 할수 있다. 그가 국화 왕좌에 계승전에 그의 개인 이름은 타케하루 신노(尊治親王)였다. 그는 다이카쿠지토 천황 즉 고우다 천황의 차남이였다. 그의 어머니는 후지와라노 추시/타다코(藤原忠子)로 후지와라 노 타다츠구(藤原忠継/五辻忠継)의 딸이였다. 고다이고 인생의 사건고다이고 천황은 29세에 천황이 되었다. 1319년 2월에 하나조노 천황 11년(花園天皇11年)에 천황이 그의 조카이며 전 천황 고우다의 차남에게 양위하였다. 직후에 고다이고 천황이 왕좌(소쿠이)에 올랐다. 1324년 4월 고다이고 천황이 카마쿠라 막부를 전복할 계획을 발견한 로쿠하라 탄다이는 쇼추 사건에 그의 측근 히노 스케토모를 파면하였다. 1331년 게코 사건에 고다이고 천황의 계획은 그의 측근 요시다 사다후사의 배반으로 다시 발각되었다. 그느 빠르게 일본왕실의 보물을 카시기야마의 한적한 성에 감추었다. 그곳은 현재의 교토 부의 카사기의 마을이다. 그기고 그는 군대를 모집하였지만 성이 그 다음해에 막부의 군대에 떨어졌다. 그들은 코곤 천황을 세우고 고다이고 천황을 오키섬으로 유배시켰다. 그곳은 1198년 고토바 천황이 유배된 곳과 같은 장소였다. 1333년 고다이고 천황은 나와 나가토시와 그의 가족의 도움으로 오키에서 탈출하여 호키부 후나가미 산에서 군대를 모집하였다.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천황과 포로 로쿠하라 탄다이를 대동하고 이 군대를 찾아 파괴하기위해 카마쿠라 막부에의해 파견되었다. 그 직후에 니타 요시사다도 동쪽에서 군대를 일으켜 호죠 씨족을 파괴하고 막부를 체포하였다. 교토로 돌아온 고다이고 천황은 코곤 천황으로부터 왕좌를 빼았고 켐무 복구를 시작하였다. 1335년 아시카가 타가우치는 나카센다이 반란을 진압하기위해 황명을 얻지못하고 동일본으로 여행하였다. 그는 복구로 인해 악영향을 받았다. 고다이고 천황은 니타 요시사다이게 아시카가를 추격하여 파괴할 것을 명하였다. 아시카가는 니타 요시사다를 하코네의 타케노시타 전투에서 격파하였다. 쿠수노키 마사시게와 키타바타케 아키이에는 쿄토와 연락하여 아시카가 군대를 깨트렸다. 타카우지는 큐슈로 달아났지만 다음 해에 다시 군대를 조직하여 다시 교토로 진군하였다. 쿠수노키 마사시게는 아시카가 타카우지와 천황의 화해를 제안하였지만 고다이고는 이것을 거절하였다. 그는 마사시게와 요시사다에게 타카우지를 격파할 것을 명하였다. 쿠수노키의 군대는 미나토가와의 전투(湊川戦).에서 패하였다. 아시카가의 군대가 교토에 입성하였을 때 고다이고 천황은 히에이 산으로 달아났지만 화해를 구하여 그는 일본 황실의 보물을 아시카가 측에 보냈다. 타카우지는 지묘인토 천황(코묘 천황)을 등극시켰고 공식적으로 그의 막부는 케무 법전의 연기와 함께 시작되었다. 고다이고는 수도에서 탈출하여 요시노 산맥에서 남조를 세웠다. 그리하여 교토의 북조와 요시노의 남조의 남북조 시대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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